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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중(전, 민족사관고 수학 주임)

관리자 │ 202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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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문제를 풀지 말고 보게 하자. -수학은 미학이다 -

전 민족사관고 수학주임 오연중

한국 수학계와 필자에게는 2022년이 매우 특별한 해이다.

지난 21일에는 국제수학연맹(IMU)이 한국의 수학 국가 랭킹을 최고등급인 그룹5로 공인하였다. 그룹5는 그룹1 보다 5배나 많은 IMU의 의사결정권을 갖는다.

1981년 그룹1IMU에 겨우 입회 원서를 냈던 한국이 40년 후에 세계 최고 등급의 수학적 역량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에 더하여 지난 7월 러시아의 우크라니나 침공과 COVID-19로 개최가 어려운 상황 가운데 간신히 열린 IMU총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인에게 필즈 메달을 수여했다. 그의 이름은 허준이 교수이다.

매년 0.8명 정도 밖에 탈 수 없어 노벨상 보다 타기 어렵다고 알려진 귀한 상이다. 필자는 몇 년 전부터 허준이 교수가 대단한 수학자임을 알고 있었다. 그의 주된 연구 분야는 대수기하학인데 20세기 이 분야의 가장 큰 공헌자는 그로덴디크라는 수학자이다. 허준이 교수가 이 위대한 수학자와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까? 그로덴디크와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 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본 아름다운 수학의 세계 속에서, 그가 펼친 아름다운 수식 속에서 달콤한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필자는 지난 학기에도 원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그러나 수학을 보여주는 데는 많이 실패했다. 20문제가 넘는 정기 고사는 수학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 가장 방해가 된다. 잘 정해진 진도를 고사 전까지 잘 나가야하기에 교과서 내용 외의 것을 심도 있게 다루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학생들의 주된 관심은 오직 내신 성적을 잘 받는 것이다. 평가 받기 위한 공부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러분은 흥미와 아름다움과 가치를 못 느끼는 분야에 과연 12년간 미칠 수 있으신가요? ‘몰두한다는 말을 미친다는 다소 과격한 말로 대체했다. 그런데 미치지 않고 어느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일은 불가능하다.

몰두하면 고통도 잊는다. 몰두한 사람은 그 세계의 황홀한 무지개를 본다. 몰두한 사람은 온 몸으로 마주한 세계와 교감하며 그 세계가 주는 시련, 시험, 희열을 모두 자기 몸에 각인하며 작은 진전을 위해 온 몸과 혼을 불사르기를 그만두지 아니한다.

한 번 검색해보라. 오일러, 그로덴디크, 라마누잔, 로람 슈바르츠, 다비트 힐베르트, 앙리 푸앙카레, 폴 에르되시, 장 피에르 세르, 이임학, 허준이, 박진영... 국내외 이들 저명한 수학자들이 과연 수학의 어느 세계에 아름다움을 느껴 수학과 사랑에 빠졌는지를...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45분에서 50분 동안 20문제가 넘는 문제를 풀고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보통 교과서와 문제집 두 세권을 풀게 된다. 즉 기계적으로 빨리 답을 구하는데 익숙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는 학생들이 문제를 잘 푸는 것 보다 문제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고 아름다운 문제를 만드는 수학 교육에 시동을 걸자.

! 수학의 소비자가 아니라 수학의 창조자라면 다음 식의 아름다움을 언제인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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